열거 타입은 일정 개수의 상수 값을 정의한 다음, 그 외의 값은 허용하지 않는 타입이다. 사계절, 태양계의 행성, 카드게임의 카드 종류 등이 좋은 예다. 자바에서 열거 타입을 지원하기 전에는 정수 상수를 한 묶음 선언해서 사용하곤 했다.
1 2 3 4 5 6 7 8 9 10 | /* * 정수 열거 패턴 - 상당히 취약하다! */ public static final int APPLE_FUJI = 0; public static final int APPLE_PIPPIN = 1; public static final int APPLE_GRANNY_SMITH = 2; public static final int ORANGE_NAVEL = 0; public static final int ORANGE_TEMPLE = 1; public static final int ORANGE_BLOOD = 2; | cs |
정수 열거 패턴(int enum pattern) 기법에는 단점이 많다. 타입 안전을 보장할 방법이 없으며 표현력도 좋지 않다. 오렌지를 건네야 할 메소드에 사과를 보내고 동등 연산자(==)로 비교하더라도 컴파일러는 아무런 경고 메시지를 출력하지 않는다.
시과용 상수의 이름은 모두 APPLE_로 시작하고, 오렌지용 상수는 모두 ORANGE_로 시작한다. 자바가 정수 열거 패턴을 위한 별도 이름공간(namespace)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접두어를 써서 이름 충돌을 방지하는 것이다.
정수 열거 패턴을 사용한 프로그램은 깨지기 쉽다. 평범한 상수를 나열한 것뿐이라 컴파일하면 그 값이 클라이언트 파일에 그대로 새겨지므로, 상수의 값이 바뀌면 클라이언트도 반드시 다시 컴파일해야 한다.
정수 상수는 문자열로 출력하기가 다소 까다롭다. 그 값을 출력하거나 디버거로 살펴보면 의미가 아닌 단지 숫자로만 보여서 썩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같은 정수 열거 그룹에 속한 모든 상수를 한 바퀴 순회하는 방법도 마땅치 않으며, 그 안에 상수가 몇 개인지도 알 수 없다.
정수 대신 문자열 상수를 사용하는 변형 패턴도 있다. 문자열 열거 패턴(string enum pattern)이라 하는 이 변형은 더 나쁘다. 상수의 의미를 출력할 수 있다는 점은 좋지만, 경험이 부족한 프로그래머가 문자열 상수의 이름 대신 문자열 값을 그대로 하드코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하드코딩한 문자열에 오타가 있어도 컴파일러는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에 런타임 버그가 생길 수도 있다.
다행히 자바는 열거 패턴의 단점을 말끔히 씻어주는 동시에 여러 장점을 안겨주는 대안을 제시했는데, 그게 바로 열거 타입(enum type)이다. 겉보기에는 C, C++, C# 같은 다른 언어의 열거 타입과 비슷하지만, 자바의 열거 타입은 완전한 형태의 클래스라서 단순한 정숫값일 뿐인 다른 언어의 열거 타입보다 훨씬 강력하다. 다음은 열거 타입의 가장 단순한 형태이다.
1 2 3 4 5 | /* * 가장 단순한 열거 타입 */ public enum Apple { FUJI, PIPPIN, GRANNY_SMITH } public enum Orange { NAVEL, TEMPLE, BLOOD } | cs |
열거 타입 자체는 클래스이며, 상수 하나당 자신의 인스턴스를 하나씩 만들어 public static final 필드로 공개한다. 열거 타입은 밖에서 접근할 수 있는 생성자를 제공하지 않으므로 사실상 final이다. 따라서 클라이언트가 인스턴스를 직접 생성하거나 확장할 수 없으니 열거 타입 선언으로 만들어진 인스턴스들은 딱 하나씩만 존재함이 보장된다. 다시 말해 열거 타입은 인스턴스 통제되며, 싱글턴은 원소가 하나뿐인 열거 타입이라 할 수 있고, 거꾸로 열거 타입은 싱글턴을 일반화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열거 타입은 컴파일타임 타입 안전성을 제공한다. Apple의 열거 타입을 매개변수로 받는 메소드를 선언했다면, 건네받은 참조는 null이 아니라면 Apple의 세 가지 값 중 하나임이 확실하다. 다른 타입의 값을 넘기려 하면 컴파일 오류가 난다.
열거 타입에는 각자의 이름공간이 있어서 이름이 같은 상수도 평화롭게 공존한다. 공개되는 것이 오직 필드의 이름뿐이라, 정수 열거 패턴과 달리 상수 값이 클라이언트로 컴파일되어 각인되지 않기 때문에, 열거 타입에 새로운 상수를 추가하거나 순서를 바꿔도 다시 컴파일하지 않아도 된다. 마지막으로 열거 타입의 toString 메소드는 출력하기에 적합한 문자열을 내어준다.
이처럼 열거 타입은 정수 열거 패턴의 단점들을 해소해준다. 또한 열거 타입에는 임의의 메소드나 필드를 추가할 수 있고 임의의 인터페이스를 구현하게 할 수도 있다.
열거 타입에 메소드나 필드를 추가하는 기능은 상수와 연관된 데이터를 해당 상수 자체에 내재시키고 싶을 때 필요한 기능이다. Apple과 Orange를 예로 들면, 과일의 색을 알려주거나 과일 이미지를 반환하는 메소드를 추가하고 싶을 수 있는데, 열거 타입에는 어떤 메소드도 추가할 수 있다. 그저 상수 모음일 뿐인 열거 타입이지만, 실제로는 클래스이므로 고차원의 추상 개념 하나를 완벽히 표현해낼 수도 있는 것이다.
태양계의 여덟 행성은 열거 타입을 설명하기 좋은 예다.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 /* * 데이터와 메소드를 갖는 열거 타입 */ public enum Planet { MERCURY(3.302e+23, 2.439e6), VENUS (4.869e+24, 6.052e6), EARTH (5.975e+24, 6.378e6), MARS (6.419e+23, 3.393e6), JUPITER(1.899e+27, 7.149e7), SATURN (5.685e+26, 6.027e7), URANUS (8.683e+25, 2.556e7), NEPTUNE(1.024e+26, 2.477e7); private final double mass; // 질량(단위: 킬로그램) private final double radius; // 반지름(단위: 미터) private final double surfaceGravity; // 표면중력(단위: m / s^2) // 중력상수(단위: m^3 / kg s^2) private static final double G = 6.67300E-11; // 생성자 Planet(double mass, double radius) { this.mass = mass; this.radius = radius; surfaceGravity = G * mass / (radius * radius); } public double mass() { return mass; } public double radius() { return radius; } public double surfaceGravity() { return surfaceGravity; } public double surfaceWeight(double mass) { return mass * surfaceGravity; // F = ma } } | cs |
거대한 열거 타입을 만드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다. 열거 타입 상수 각각을 특정 데이터와 연결지으려면 생성자에서 데이터를 받아 인스턴스 필드에 저장하면 된다. 열거 타입은 근본적으로 불변이라 모든 필드는 final이어야 한다. 필드를 public으로 선언해도 되지만, private으로 두고 별도의 public 접근자 메소드를 두는 게 낫다.
Planet 열거 타입은 단순하지만 놀랍도록 강력하다. 어떤 객체의 지구에서의 무게를 입력받아 여덟 행성에서의 무게를 출력하는 일은 다음처럼 짧은 코드로 작성할 수 있다.
1 2 3 4 5 6 7 8 9 | public class WieghtTable { public static void main(String[] args) { double earthWeight = Double.parseDouble(args[0]); double mass = earthWeight / Planet.EARTH.surfaceGravity(); for (Planet p : Planet.values()) System.out.printf("%s에서의 무게는 %f이다.%n", p, p.surfaceWeight(mass)); } } | cs |
열거 타입은 자신 안에 정의된 상수들의 값을 배열에 담아 반환하는 정적 메소드인 values를 제공한다. 값들은 선언된 순서로 저장되며, 각 열거 타입 값의 toString 메소드는 상수 이름을 문자열로 반환하므로 println과 printf로 출력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열거 타입에서 상수를 제거하고 제거한 상수를 참조하는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을 다시 컴파일하면 컴파일 오류가 발생한다. 다시 컴파일하지 않으면 런타임에 예외가 발생할 것이다. 정수 열거 패턴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가장 바람직한 대응이라 볼 수 있다.
Planet 상수들은 서로 다른 데이터와 연결되는 데 그쳤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상수마다 동작이 달라져야 하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사칙연산 계산기의 연산 종류를 열거 타입으로 선언하고, 실제 연산까지 열거 타입 상수가 직접 수행했으면 한다고 해보자.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 /* * 값에 따라 분기하는 열거 타입 - 이대로 만족하는가? */ public enum Operation { PLUS, MINUS, TIMES, DIVIDE; // 상수가 뜻하는 연산을 수행한다. public double apply(double x, double y) { switch(this) { case PLUS: return x + y; case MINUS: return x - y; case TIMES: return x * y; case DIVIDE: return x / y; } throw new AssertionError("알 수 없는 연산: " + this); } } | cs |
동작은 하지만 그리 예쁘지는 않다. 마지막의 throw 문은 실제로는 도달할 일이 없지만 기술적으로는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생략하면 컴파일조차 되지 않는다. 더 나쁜 점은 깨지기 쉬운 코드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새로운 상수를 추가하면 해당 case 문도 추가해야 한다. 혹시라도 깜빡한다면, 컴파일은 되지만 새로 추가한 연산을 수행하려 할 때 런타임 오류를 내며 프로그램이 종료된다.
다행히 열거 타입은 상수별로 다르게 동작하는 코드를 구현하는 더 나은 수단을 제공한다. 열거 타입에 apply라는 추상 메소드를 선언하고 각 상수별 클래스 몸체(constant-specific class body), 즉 각 상수에서 자신에 맞게 재정의하는 방법이다.
1 2 3 4 5 6 7 8 9 10 11 | /* * 상수별 메소드 구현을 활용한 열거 타입 */ public enum Operation { PLUS {public double apply(double x, double y){return x + y;}}, MINUS {public double apply(double x, double y){return x - y;}}, TIMES {public double apply(double x, double y){return x * y;}}, DIVIDE{public double apply(double x, double y){return x / y;}}; public abstract double apply(double x, double y); } | cs |
보다시피 apply 메소드가 상수 선언 바로 앞에 붙어 있으니 새로운 상수를 추가할 때 apply도 재정의해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apply가 추상 메소드이므로 재정의하지 않았다면 컴파일 오류로 알려준다.
상수별 메소드 구현을 상수별 데이터와 결합할 수도 있다. 다음은 Operation의 toString을 재정의해 해당 연산을 뜻하는 기호를 반환하도록 한 예다.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 /* * 상수별 클래스 몸체(class body)와 데이터를 사용한 열거 타입 */ public enum Operation { PLUS("+") { public double apply(double x, double y) { return x + y; } }, MINUS("-") { public double apply(double x, double y) { return x - y; } }, TIMES("*") { public double apply(double x, double y) { return x * y; } }, DIVIDE("/") { public double apply(double x, double y) { return x / y; } }; private final String symbol; Operation(String symbol) { this.symbol = symbol; } @override public String toString() { return symbol; } public abstract double apply(double x, double y); } | cs |
상수별 메소드 구현에는 열거 타입 상수끼리 코드를 공유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값에 따라 분기하여 코드를 공유하는 것은 간결하지만, 관리 관점에서는 위험한 코드다. 새로운 값을 열거 타입에 추가하려면 그 값을 처리하는 case 문을 잊지 말고 쌍으로 넣어줘야 하는 것이다.
일당을 계산해주는 메소드로 예를 들었을 때, 가장 깔끔한 방법은 새로운 상수를 추가할 때 잔업수당 '전략'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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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업수당 계산을 private 중첩 열거 타입(PayType)으로 옮기고 PayrollDay 열거 타입의 생성자에서 이 중 적당한 것을 선택한다. 그러면 PayrollDay 열거 타입은 잔여수당 계산을 그 전략 열거 타입에 위임하여, switch 문이나 상수별 메소드 구현이 필요 없게 된다. 이 패턴은 switch 문보다 복잡하지만 더 안전하고 유연하다.
switch 문은 열거 타입의 상수별 동작을 구현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기존 열거 타입에 상수별 동작을 혼합해 넣을 때는 switch 문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필요한 원소를 컴파일타임에 다 알 수 있는 상수 집합이라면 항상 열거 타입을 사용하자. 또한 열거 타입은 나중에 상수가 추가돼도 바이너리 수준에서 호환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열거 타입에 정의된 상수 개수가 영원히 고정 불변일 필요는 없다.
열거 타입은 확실히 정수 상수보다 뛰어나다. 더 읽기 쉽고 안전하고 강력하다. 대다수 열거 타입이 명시적 생성자나 메소드 없이 쓰이지만, 각 상수를 특정 데이터와 연결짓거나 상수마다 다르게 동작하게 할 때는 필요하다. 드물게는 하나의 메소드가 상수별로 다르게 동작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열거 타입에서는 switch 문 대신 상수별 메소드 구현을 사용하자. 열거 타입 상수 일부가 같은 동작을 공유한다면 전략 열거 타입 패턴을 사용하자.